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패트릭 유잉 (문단 편집) ==== 드디어 찾아온 우승 도전의 기회. 그러나... ==== 1997-98 시즌은 닉스가 젊은 유망주들 셋에 그해 뽑은 신인까지 4명을 모두 팔아치우고 즉시전력감인 크리스 더들리와 크리스 밀즈까지 데려오며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우승에 도전했던 해였다. 우선 닉스는 FA가 된 유잉을 4년 6천 8백만 달러의 대형 계약으로 잔류시키는데 성공했다.[* FA가 된 첫날에 바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닉스의 제시한 계약기간과 금액에 한 번에 사인했다고 한다. 타 팀과 접촉으로 몸값이나 계약기간을 늘릴 수도 있었지만 유잉은 그런 것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았을 정도로 닉스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선수였다.] 또한 닉스의 약점이었던 유잉을 보좌할 수 있는 백업 센터로 포틀랜드의 주전 센터 크리스 더들리를[* 이미 전 시즌 최고의 전력을 맞췄던 닉스의 유일한 약점은 유잉을 받쳐줄 백업 센터가 없다는 부분이었다. 이 약점을 공격력은 형편없어도 수비만큼은 매 경기 10리바운드 2블록 이상을 보장해주던 수비형 센터의 스페셜리스트 크리스 더들리를 데려오면서 단숨에 해결했다. 오죽했으면 당시 이 소식을 전하던 국내 언론 기사 제목이 '더들리 영입으로 신나는(...) 뉴욕' 이었다. 뉴욕은 그 댓가로 시라큐스 출신으로 신인 첫해 좋은 모습을 보여준 존 월라스를 포기해야 했다.], [[찰스 오클리]]와 [[래리 존슨]]을 보좌할 프론트 코트의 제 3의 포워드로 당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주전 스몰 포워드로 활약하다가 오프시즌 [[보스턴 셀틱스]]와 FA 계약을 맺었던 크리스 밀즈를 데려왔다.[* 크리스 밀즈 한 명을 데려오기 위해 전해에 드래프트에서 뽑았던 월터 맥카티, [[단테 존스]], 그 해 드래프트에서 뽑은 신인 존 토마스에 샐러리 필러용으로 스캇 브룩스까지 무려 4명의 선수를 퍼줬다. 미래 따위는 생각지 않고 오로지 그 해 우승만을 노리겠다는 닉스의 결단이었다.] 타 팀의 주전 선수 두 명을 벤치멤버로 영입한 탓에 이 시즌의 닉스는 백업 멤버들만으로도 웬만한 중위권 팀 수준의 주전 라인업을 꾸릴 수 있는 수준의 엄청난 뎁스를 자랑했다.[* 주전으로 C 패트릭 유잉, PF [[찰스 오클리]] SF, [[래리 존슨]], SG [[앨런 휴스턴]], PG 찰리 워드에 벤치멤버로 C 크리스 더들리, PF [[벅 윌리엄스]], SF 크리스 밀즈, SG [[존 스탁스]], PG 크리스 차일즈-로 베스트5를 하나 더 꾸릴 수 있었다. 앨런 휴스턴이 오기 전 닉스의 주전 슈팅 가드로 활약했던 스탁스는 논외로 치더라도 나머지 네 명 모두 닉스에 오기 전엔 각자 타 팀의 스타팅 멤버로 활약했던 선수들이었다.] 유명 스포츠 전문지인 스포트 일러스트레이티드(SI)에서 시즌 개막 전 우승 후보로 또 한번의 3연패에 도전하는 [[시카고 불스]]가 아닌 뉴욕 닉스를 꼽았을 정도로 이 시즌 닉스의 기대감은 컸다. '''그러나 닉스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재앙이 닥쳐왔다! 달리 말하자면 유잉과 뉴욕의 마지막 남은 우승의 꿈이 그대로 날아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12월 20일 [[밀워키 벅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유잉이 2쿼터 종료 직전 덩크를 시도하려 공중에 뜬 상태에서 매치업 상대인 앤드류 랭의 파울로 코트에 넘어질 때 오른손이 자신의 몸에 깔려버리는 중상을 당하게 된다. (당시 [[http://cdn.bleacherreport.net/images_root/slides/photos/003/273/180/patrickewing_crop_650.jpg?1374586479|부상 직후 장면]]) 오른손을 쓰지 못해 왼손으로만 자유투 2개를 던진 뒤(당연히 둘 다 실패) 바로 코트를 떠나 병원행. 진단 결과 손목이 골절되고 인대가 찢어져버린 큰 부상으로 재활에만 최소 6개월 이상이 걸리는 치명적인 중상이었다.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사실상 유잉의 선수 생명에 확인사살을 가할 수도 있는 마지막 결정타였다. 그 전까지 10년 동안 겨우 20게임만 빠졌을 정도로 건실하게 닉스의 골밑을 지켜줬던 유잉이 없는 채로 시즌을 치른다는 것은 닉스에게는 말 그대로 재앙일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유잉은 시즌 아웃되었고 다음날 전 세계 언론의 NBA 소식 머릿기사가 "유잉과 닉스의 우승의 꿈은 이로서 끝났다"였다. 선수 생활 내내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고통받았던 유잉이었지만 이런 시즌 아웃급 부상은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겪는 일이었다. 유잉의 나이로 보나, 미래를 포기하고 그 시즌에 모든 것을 올인했던 팀 사정으로 보나 사실상 마지막 우승 도전 기회나 다름없었기에 너무나 안타까운 부상이었다. 슛을 던지는 오른손의 손목 부상은 이미 노장 센터가 되어버린 유잉이 가진 유일한 경쟁력이었던 미드레인지 점퍼의 정확도마저 앗아가버리는 슬픈 결과를 낳았다. 올스타 투표 1위를 달리고 있었지만 부상으로 올스타전도 출전할 수 없게 되었는데, 애석한 것은 하필 이 해 올스타전이 본인 선수 생활 가운데 유일하게 닉스의 홈구장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올스타전이었다는 것. 유잉은 염원하던 우승의 꿈 뿐만 아니라, 뉴욕의 홈팬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올스타 주전 센터로 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작은 꿈마저 날려보내야만 했다.[* 그 전까지 10년 연속 올스타전에 출전했고 이 시즌 또한 출전이 유력했지만 하필 MSG에서 열리는 올스타전을 뛰지 못하게 되었다. 불운도 이쯤되면 정말 가지가지. 참고로 이 경기의 MVP는 하필 또 마이클 조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잉은 우승에 대한 꿈과 열망을 여전히 버리지 않았다. 플레이오프도 출전이 불가능한 시즌 아웃급 부상이었지만 유잉은 플레이오프때 꼭 돌아오겠다며 동료들에게 어떻게든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달라고 부탁했으며, 부상 이후 한 경기도 빠지지 않고 벤치에서 팀 동료들을 응원했다. 유잉이 부상당한 직후 잠깐 휘청거렸던 닉스는 전열을 추스르고 다시 승수를 쌓아나가기 시작, 결국 7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며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는 2번 시드 마이애미 히트와 난투극까지 불사하는 결전 끝에 업셋을 달성하고 2라운드에 진출한다. 플레이오프 2라운드 상대는 레지 밀러의 인디애나 페이서스였고 유잉은 플레이오프때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시리즈 2차전 원정경기에서 드디어 스타팅 센터로 복귀한 것이다. 6개월만의 복귀로 경기 감각이 저하돼 시리즈 동안 야투율이 35%밖에 되지 않는 등 고전했지만, 정규 시즌보다 더 치열한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경기당 33분을 출전하며 평균 14.0득점 8.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투혼을 발휘했다. 하지만 유잉이 정상 컨디션으로 뛰지 못하는 닉스에게 인디애나는 버거운 상대였고 닉스와 유잉은 또 한번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분루를 삼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